[사회환경] '신뢰의 구조'와 사회환경
Journalist : changjo | Date : 13/06/05 9:12 | view : 307242     
 

세상에서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러다 보면 의도하든 안하든 자연스레

어떤 일을 기대하게 되고 또는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때를 맞는다.

그럴 경우 한 결정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것은 '신뢰'를 검증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만큼은 당사자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한 것이 된다.

어떤 보이지 않는 구조적 실체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세상을 살면서,

'순수한'(?) 조건과 상황에서 신뢰를 평가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환경의 보이지 않는 그래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실제적이고 강력하기까지 한 구조적 맥락을 짚어보려한다.





요즘 TV에서 '머독 미스터리'라는 캐나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1895년 빅토리아 시대의 캐나다 토론토 지역 경찰대를 배경으로 한 수사극이다.



경찰관 한 명이 차이나 타운에서 피살된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주인공 머독 형사는 동료 경찰관들로 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그 원인인 즉은 동료의 죽음에 분개한 다수의 경찰관들과는 달리,

머독은 냉정하게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 유력한 용의자인 중국인을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물 머독과 긴장관계를 갖게 되는 다수의 경찰관들과의 차이는

머독이 동료 경찰관의 죽음이라는 상황과 사건의 진실을 분리한 것과는 달리

다른 경찰관들은 동료 경찰관의 죽음 앞에서 곧 사건의 진실이 덜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사건의 진실은 동료 경찰관의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상황 앞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범인을 찾아내어 그 원수를 갚는 것으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즉, 사건의 진실은 동료 경찰관들의 원수 갚기의 장식품이 되었기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평소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중국인들에 대한 인식구조와 함께

왜곡된 사건의 진실에 대한 중요성은 오히려 피해자인 한 중국인을 피의자로 바꾸게까지 이른다.



드라마 얘기는 이제 그만 하고,

이를 일반화 하면, 진실의 중요성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구조에 따라서 약화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습관이나 내공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환경 즉, 내가 속한 단체나 그룹, 집단 등의 힘의 역학구조에 영향을 받아

우리의 인식구조가 변질되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는 항상 내가 속한 그룹이나 단체, 집단의 한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되면 개인(단독자:monad)으로 살아갈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개인으로 살아가기를 꺼려한 나머지,

개인으로 살아갈 날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사회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한 예를 들어보면,



아들 길동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한 부모님이 있다.

아들 친구 성원이가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있다.

길동이 엄마는 성원이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한다.

생김새를 살피고, 얼마나 똘망한지, 성격은 어떤지 등을 살핀다.

그러다가, 아들 길동이가 성원이 집은 유치원 아래 골목 집에 산다고 한다.

그러자, 이전에 성원이를 차근차근 살피는 행동은 종지부를 찍는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길동이 친구 성원이는 사라지고,

유치원 아래 골목 집 즉, 허름한 집에 사는 성원이가 된다.



아들 길동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순수하고 진실되게 차근차근 살피던 성원이와 관련된 진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의료사고가 나서 아들을 잃은 엄마가

수 많은 의료 관련 논문들 가운데서 아들이 받은 치료와 같은 건의 논문을 찾아내었다.

항암 치료시 두 가지 약물을 혼동하여 사용하였을 경우 어떤 부작용 현상이 있는 지에 관한 내용이다.

아들이 죽게 된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 즉, 의사의 의견서가 의료사고 판결에 필수적이다.



한 엄마가 갑작스레 아들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냉정하게 관련 논문을 찾아낸 것에 비해서,

의견서를 요청한 여러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2년이 넘도록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의료지식에 문외한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명약관화한 진실이

자신이 속한 의사 그룹에서 이탈될 것을 두려워하는 의사들에 의해서 아직 숨겨져 있는 상황이다.



진실이 단독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가 처한 '사회'라는 환경인 것이다.



어떤 진실을 판단, 분별하게 되는 일은 어떤 것을 더 신뢰하는냐 하는 '신뢰의 구조' 문제이다.



공무원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된다. 강사, 기획 담당자, 연출자, 출연자 등을 선별해야 된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도 신입사원 모집을 할 때,사람을 분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활용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보이는 과정은 '자료'이지만,

보이지 않는 분별과 판단의 과정에는 '신뢰의 구조'가 활용된다는 것이다.



분별과 판단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순수하게 사람을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못한다.

분별과 판단을 하는 그 사람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얼마나 자유로워 있느냐 라는

'신뢰의 구조'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신뢰의 구조'가 순수하면 순수하게 주체적으로 분별하게 될 것이며,

사회적 상황에 얽매여 있는 만큼 변질된 '신뢰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보다 순수하지 못하게 주체적 분별은 사라지고,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분별하게 된다.



머독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자 범인은 결국 동료 경찰이었다.



그에게 상관은 전직을 권한다.

진실을 밝혔지만, 결국 동료 경찰을 피의자로 주목한 머독 형사는

그가 속한 집단인 경찰 사회에서 '잘 못한 사람'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분적으로는 잘했지만, 큰 잘 못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왜곡된 '신뢰의 구조'가 판치는 세상이다.

죄악된 우리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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